블리자드의 12가지 게임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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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수석 기획자였고, 2010년 블리자드 게임 기획 부서의 부사장(Executive Vice President)를 맡은 롭 팔도(Rob Pardo)가 GDC 2010 강연에서 ‘Making a Standard(and Trying to Stick to it!): Bizzard Design Philosophies’라는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글이다.

강연에 앞서 롭 팔도는 “우리의 게임 디자인 가치관이 여러분 스튜디오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게임 디자인의 가치관은 여러분 스스로 무엇이 여러분 게임에 중요하고, 필요한지 판단하여 각자 적합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규모가 큰 스튜디오나 부서의 경우 구성원 모두가 현재 어떤 작업이 진행 중인지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므로 이런 작업이 더욱 필요하다. 여러분 게임이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블리자드의 가치관이 아니라 여러분만의 가치관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두었다.

게임 플레이 우선

간혹 기술을 강조하는 스튜디오도 있지만, 우리는 ‘게임의 재미’를 중시한다. 그러나, 이 말이 게임 디자인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뜻은 아니다. 자칫하면 플레이어들은 재미 없어 하는데, 디자이너에게만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워크래프트 3>의 세계관에 따르면 드루이드는 나이트엘프 남자만이 가능했다. 하지만 크리스 맷젠은 고민 끝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WoW)에서 이 세계관을 수정해 나이트엘프 남녀 모두 드루이드가 가능하도록 변경했다.

이런 예는 또 있다. <WoW> 초기에 얼라이언스에 성기사, 호드에는 주술사가 있었고, 두 클래스는 확연하게 다르게 디자인됐다. 그러나, 게임 밸런스를 맞추면서 두 클래스는 점점 닮아 가게 되었고, <WoW>의 첫 확장팩 <불타는 성전>에서는 세계관을 수정해 양쪽 진영 모두 성기사와 주술사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게임디자인은 항상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접하기는 쉽게, 마스터는 불가능하게

이 콘셉은 블리자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스튜디오가 가지고 있는 콘셉이다. 게임 초기엔 간단한 플레이 방법과 확실한 목표만을 알려 주고, 게임 진행 중에 플레이어 간의 레벨을 나눌 수 있는 도전과제를 제공한다.

‘처음 접하기는 쉽게, 마스터는 힘들게’를 블리자드 식으로 다시 읽으면 ‘배우기는 쉽게, 마스터하기는 불가능하게’라고 할 수 있다.

<WoW>가 플레이하기 쉬운 게임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WoW>는 굉장히 하드코어한 게임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수백 시간의 플레이가 필요하며 오리지널에서는 40명, 현재는 25명의 플레이어를 이끌어야 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디아블로 2>는 이 부분에서 실패한 경우고, <WoW>는 성공한 경우다.

우리는 <디아블로 2>에서 게임 내 경제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플레이어들은 우리 예상보다 빨리 골드를 모았고, 대부분의 골드를 마을 창고에 쌓아 두는 방법으로 죽었을 때 일정량의 골드를 드랍하는 패널티도 쉽게 피해갔다.

결국 게임 내 골드는 의미를 잃게 됐고 대신 ‘조단의 링’이 물물교환의 기준이 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이는 결코 우리가 의도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래서 <WoW>에선 골드 수입을 좀 더 세밀하게 관리했다. <디아블로 2>에서 실패했던 내구도 시스템을 이용한 골드 환수에도 성공했다. 플레이어의 골드는 잠식되지 않고 경매장 등을 통해 끊임없이 회전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게임의 깊이가 우선이다

게임의 깊이를 결정하는 작업은 게임 디자인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며,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어떤 스튜디오는 싱글플레이 개발에 2년을 쏟고 마지막 3개월을 멀티플레이에 투자하는 곳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한다. 싱글플레이는 <파이널 판타지>와 같은 게임이 약 70시간의 플레이 타임을 갖는 반면, 멀티플레이는 몇 달, 몇 년을 두고 수백 시간에 걸쳐 플레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많이 플레이하는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스타크래프트 2>의 멀티플레이 역시 싱글플레이 제작 시간의 몇 배가 소요됐다.

<WoW>의 클래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클래스마다 메커니즘이나 레벨의 성장에 따른 기술을 걱정하기에 앞서 이 클래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재미있는지 먼저 고려했다.

그 후에 인터페이스를 생각하게 되는데, 상당히 복잡한 게임 시스템을 플레이어가 보다 쉽게 접근하도록 해야 하므로 무척 중요한 부분이다.

환상이란?

<WoW>의 플레이어가 드레나이 성기사의 콘셉 이미지를 처음 보는 순간, 그 캐릭터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다. 아마도 성기사이니 힐러면서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상상하게 될 것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영웅이라면 스토리의 중심이며, 필드에선 가장 강력한 유닛이고, 전투에서 군대를 이끌며,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역할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미션에서 <스타크래프트>의 영웅은 보호를 받아야 했으며, 영웅이 죽을 경우 미션도 실패했다.

우리는 영웅을 플레이한다는 것에 대한 환상이 무엇인지 <워크래프트 3>의 영웅으로부터 배웠다. 영웅은 가장 강력한 유닛이며, 소규모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죽을 경우 부활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됐다.

모든 것을 강력하게

모든 클래스와 유닛은 플레이어가 느끼기에 어떤 것도 이들을 멈출 수 없다고 여겨질만큼 강력한 느낌을 전달하도록 디자인한다.

모든 메인 캐릭터의 키가 150cm였다고 전부 그것에 맞출 필요는 없다. 스토리와 세계관에 녹아들 수 있는 선에서 다르게 디자인할 수 있다. 평범하게 밸런스를 맞추지 않고 각 종족과 클래스마다 모두 다른 느낌이 들도록 밸런스를 맞춘다.

냉정함을 유지하라

<WoW>를 제작했을 때 <워크래프트 3>의 영웅 각각을 클래스로 만들기보다 <WoW>의 클래스에 <워크래프트> 영웅의 특징이 녹아 들게 디자인했다. 예를 들어 <워크래프트 3>의 영웅 중에서 마운틴킹과 블레이드마스터, 타우렌칩튼의 능력을 골고루 갖도록 디자인된 클래스가 <WoW>의 전사였다.

아울러 플레이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복잡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WoW>의 PvP는 빠른 속도의 전투가 전개되는 와중에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한 눈에 파악되도록 복잡성의 한계를 정의했다.

<WoW>의 탈것은 이런 복잡성의 한계 조절에 실패한 경우다. 반면, <스타크래프트 2>의 유닛은 성공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WoW>의 탈것은 원래 겨울손아귀 전장에서 탈것을 이용한 무기의 개념으로 시작됐으나, 아이디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게임 곳곳에 적용하다 보니 냉정함을 잃어버렸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시스템이라도 마구 적용하기보다 시간을 갖고 천천히 적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유닛을 <스타크래프트 2>의 유닛에 이식하는 과정은 성공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위해 ‘15 유닛 규칙’을 적용했다. 어떤 신규 유닛이 하나 추가되면 기존 유닛 중 하나가 빠져야 한다.

게임 플레이는 스토리를 말해 주지 않는다

게임의 스토리는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게 해 줘야지 보여 줘서는 안 된다. 스토리는 주로 텍스트와 성우, 영상을 통해 전달한다. 스토리텔링에 있어 <디아블로 2>는 실패한 경우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3>의 미션 브리핑은 성공한 경우다.

<디아블로 2>의 의미 없는 랜덤 몬스터 처치와 의미 없는 루팅 이후 각 액트의 보스를 죽였을 때 일방적으로 스토리를 듣게 하는 방법이나, <WoW>에서 15개의 쪽지를 모아서 스토리를 만드는 퀘스트의 경우 플레이어들이 모자란 쪽지를 경매장에서 구입함으로써 제대로 스토리텔링이 전달되지 않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워크래프트 3>의 미션 중 아서스가 마을 사람들이 언데드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사람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는 미션은 반대편에서 말가니스 역시 언데드 병력을 모으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미션 경험을 통해 스토리를 잘 전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WoW>의 죽음의 기사 스토리 역시 훌륭한 스토리텔링의 예다. 죽음의 기사 퀘스트는 죽음의 기사가 리치왕에 반대해 플레이어의 편에 서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보너스로 만들어라

<WoW>의 베타테스트 시절 휴식 시스템은 어느 정도 시간 이상을 플레이하면 경험치 보상이 50%로 줄어드는 것으로 설명되어 베타 플레이어들의 엄청난 원성을 샀다.

그런데 <WoW>가 정식으로 서비스됐을 때 처음에 200%의 경험치를 얻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100% 경험치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더니 원성이 싹 가라앉았다. 사실 두 이야기는 똑같은 것이지만 플레이어의 심리가 잘 드러난 예로 볼 수 있다.

<에버퀘스트>에서 빠른 레벨링이라면 경험치를 많이 주는 몬스터를 반복해서 빠르게 잡아야 했지만, <WoW>의 레벨링은 수집 퀘스트, 처치 퀘스트 등 다양한 퀘스트를 넣어 그 과정을 재미있게 디자인했다.

<디아블로>에서는 인벤토리에 포션을 가득 넣고 전투 도중 반복해서 눌러 줘야 했지만, <디아블로 2>에서는 몬스터를 때리면 피가 차는 옵션을 장비에 적용해 포션 사용은 줄이면서 게임플레이 속도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디자인했다.

<WoW>에서 상대의 장비를 보는 경우 ‘누가 누구를 살펴보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나왔는데, 플레이어들은 이 메시지가 나오면 “누군데 나를 보는 거야?”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원래는 플레이어의 좋은 장비를 남들이 많이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뜻에서 출발했지만, 반응이 좋지 않아 삭제했더니 모두가 만족한 경우도 있었다.

수집 퀘스트도 퀘스트 아이템은 랜덤하게 떨어지도록 했으나, 한 지역에 플레이어가 많을 경우 어떤 플레이어는 피해를 볼 수 있었다. 이에 하나의 퀘스트 아이템을 줍게 되면 다음 기회가 더 높아지도록 시스템을 개선해 랜덤성은 유지하면서 플레이어를 만족시켰던 사례도 있다.

콘트롤이 왕

콘트롤은 플레이어가 게임과 상호작용을 하는 최우선 수단이다. 콘트롤은 즉각 반응될수록 좋기에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WoW>에서 말을 탈 때 원래는 말을 부르면 나타나서 올라타는 애니메이션을 적용하려고 했다가 전부 삭제했다. 또, 마법 사용 시 멋진 동작이나, 일어설 때 [W] 키를 누르자마자 바로 전진할 수 있도록 일어나는 동작을 생략했다.

<워크래프트 3>를 개발할 때 특정 상황에서 커서가 느려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개월을 소비한 적이 있는데,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선 상당히 섬세한 노력이 요구된다.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는 분당 400번, 즉 초당 6~7번의 마우스 명령을 내리지만, 일반인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게임이 이런 빠른 반응을 지원할 수 있어야 플레이어 간의 차별화를 둘 수 있으므로 이런 작업은 중요하다.

튜닝

튜닝은 하기 쉽지만, 잘 하기는 어려운 과정이다. 튜닝을 할 때 누구를 위해 튜닝하고, 왜 튜닝을 하는지 확실히 알아야 한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의 캠페인을 튜닝할 때 기존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다는 가정 아래 진행했다. 즉 <스타크래프트> 베테랑을 위해, 처음 캠페인을 클리어한 플레이어를 위한 도전과제를 고려하고 난이도는 없애는 등의 콘셉으로 작업이 이뤄졌다.

<WoW>는 홀로 플레이해도 최고 레벨에 이를 수 있으며, 레벨과 퀘스트를 적절한 수준으로 묶는 작업이 성공한 경우다. 플레이어는 퀘스트 목록에서 퀘스트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뭔가 잘 못되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특종을 피하라

디자이너들이 작업하다 보면 완벽해지기 전까지 남에게 보여 주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게임에 적용해 보기 전까지 해당 아이디어가 게임과 제대로 어울릴지 말하기 힘들므로, 작업 도중 모두에게 자주 보여 줘야 한다.

자신의 작업에 대한 타인의 의견을 반영해 작업물의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실패했을 경우 너무 다그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반복’은 블리자드 개발 프로세스 중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WoW>의 실버문 도시는 너무 커서 부분 별로 작업했으나, 마지막까지 서로 맞춰 보질 않아서 완성까지 1년이 걸렸고, 만든 후에도 거대하긴 했지만 실제 플레이에 응용하기 힘들었던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아라시 전장은 아주 기본적인 콘셉부터 개발 중간 과정이 모두 공개되고 경험하게 함으로 써 멋진 전장이 되었다.

작업 과정은 팀원 모두와 공유한다.

항상 광택을 내는 습관

게임을 좀 더 빛나게 만드는 작업은 프로젝트의 끝에 하는 것이 아니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작업하는 기간 내내 작품을 빛내는 작업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팀이 좋아하는 게임을 더 좋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모두의 목소리가 중요하고, 타인의 의견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블리자드는 게임이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발매하지 않는다.

위의 게임 철학은 Diablo:Immortal 과 함께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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